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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예정되어 있던 일이었지만..두 번째 관람 후기.

다시 본다고 해서 크게 느낌이 다를 거란 생각은 안했다. 갑자기 안보이던게 보이거나 할리는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두번째 관람을 통해 얻은 게 있다면 각각의 캐릭터가 가진 역할이나 관계에 있어서의 태도를 조금은 더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처음 관람할 때의 압도감이나 긴장감에 빠지지 않고 조금은 더 차분하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일텐데, 세번째 관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이 영화는 볼 때 마다 말할 거리가 자꾸 생기는, 굉장히 많은 텍스트를 내포하고 있는 화수분이다. 도라에몽의 주머니다.

확실히 알게된 점 중의 하나는, 알고보니 조커는 단순히 '절대악'만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보다 오히려 조커는 '신성한 존재'라고 보는게 더 정확할 수도 있겠다. '신성한 선(善)'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저 아무도 초월할 수 없는 영역에 서 있는 '절대자'로서의 불가침의 영역에 발을 대고 있는 신성함을 말하는 거다.

다시 본 조커는 어떤 면에서는 이 영화의 화자를 대변하고 있었다. 전편에서 라스 알 굴이 배트맨을 '창조해 낸' 혹은 '낳아 준' 인물이라면 조커는 배트맨을 '완성시켜 준' 인물이다. 전편에서 얻은 주변 사람들의 신뢰와 고담시를 구해줄 구세주적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영광, 그것들은 배트맨이 가질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라는 말을, 조커의 입을 통해 놀란 감독이 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사람들에게 의심받고 괴물이라고 지탄받으며 좋은 의도로 일을 하고도 마지막엔 도망쳐야만 하는 운명, 그게 진짜 배트맨에게 어울리는 모습이며 조커가 저지르는 일련의 악행들은 배트맨을 그렇게 만들어주기 위해 준비한 치밀한 시나리오에 의한 것들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어이 배트맨~넌 이 영화 마지막에 분명히 이렇게 될거야~'라고 코치해주는 작가를 대변한 캐릭터라면, 배트맨이 당해 낼 재간이 없는 것도 당연하다.)

그것을 위해 조커는 존재했다. 즉, 조커는 배트맨의 대립각이 아니라 배트맨을 위해 존재하는 동면의 뒷면같은 존재라는 말이다. (앞뒤가 똑같은 하비 덴트의 동전처럼) 어쩌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일까. 그렇게 볼 수도 있는 것이, 이 영화의 조커는 그 근원도 없고 신분도 불확실하다. 그냥 어디선가 뚝 떨어진 제3종인 것 같다.

전혀 존재할 것 같지 않았던, 팀 버튼의 배트맨 영화와의 공통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버튼의 배트맨처럼 직접적인 폭력으로 엮인 원한관계는 아니지만 서로에게 존재의미를 가지고 있고 서로를 완성시킨다. 그 말은, 반대로 배트맨도 조커에게 있어서 동면의 뒷면일 수도 있다는 거다.

비긴즈의 말미에 고든이 하는 말을 보면 조커는 그저 '골치 아픈 녀석' 정도에 불과했다. 고든의 자식들의 성장 추이로 봐선 비긴즈와 다크 나이트 사이에 적지 않은 시간의 간격이 있는 것 같은데 그 시간 동안 배트맨과 조커가 만난 적이 없다는 것만 봐도 조커가 이 영화에서 보여진 것 처럼 처음부터 지독한 악당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거다. 다른 곳도 아니고 그 고담시 안에서 한 두 번의 살인이나 은행 강도질은 사실 어디가서 나 악당이오 하고 명함 내밀기도 난처한 이력이다. 그러던 조커가 배트맨을 잡기 위해 직접 나섰다. 원한도 없고 돌아오는 것도 없다. 어차피 배트맨이 먼저 조커의 영역을 침범한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배트맨의 성장과 맞물리는 시기에 조커도 전면으로 나섰다는 것은 배트맨의 존재 자체가 조커를 자극해서 불러냈다고 밖엔 볼 수 없다. 결국 조커를 만든 것도 배트맨이다.

결국 근본적인 악은 배트맨이다. 하비의 말처럼 미친개를 풀어놓은 사람이 악이라는 거다. 전편에선 사실 직접적인 살인을 저지르진 않은 라스 알 굴도 죽게 내버려뒀으면서 정작 조커는 차마 죽이지 못하고 살려준다. 조커도 배트맨이 자기를 죽이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고있다. 어쩌면 배트맨도 조커의 존재를 필요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늘 생각해오던 생각이 있는데, 배트맨은 어쩌면 진정한 정의의 자경단이기 보다는 개인적인 스트레스를, 몸과 몸이 부딪히고 서로 다치는 폭력을 통해 해소하는 새디스트, 마조히스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걸 이 영화를 통해 굳히게 됐다.

정말 고담시 내에서 폭력을 뿌리뽑고 싶다는 순수한 의도 하나 뿐이라면 자기가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방법도 있지만 그와 병행해서 그 돈으로 실력 좋은 용병을 고용해서 범죄자들을 일일이 암살해도 되는 건데 말이다. 웨인 기업의 회장이라는 위치와 그 정도 재력이면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더 치명적이고 확실한 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는 일이다. 굳이 살상용 실탄까지는 아니더라도 전기 충격이나 마취 가스 등을 통해 적을 한번에 제압할 수 있는무기를, 과연 만들 능력이 없어서 그러고 다니는 걸까. (스케어크로우의 환각 가스를 똑같이 만들어서 조커에게 썼다면 어떻게 됐을까 몹시 궁금해진다.) 결국 농담으로 하는 말마따나 '영웅 놀이'를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쯤에서 적절하게 조커 웃음소리 한 번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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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 덴트는 그냥 하비 덴트다. 두번째의 관람을 통해 재발견되기 보다는 오히려 더 크게 다가오는 조커에 의해 더 눌리는 느낌이랄까. 그냥 이런 말이 떠오른다. 단단한 나무는 바람에 쉽게 부러진다는 말. 그처럼 고지식한 사람은 극단적이기 때문에 변절하기도 쉽다. (이런 걸 두고 '모 아니면 도'라고 한다.) 아마 하비가 제다이였다면 누구보다도 증오에 불타고 전투적인 시스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투 페이스로서의 모습은 아주 짧게 나올 뿐이지만 <배트맨 포에버>의 토미 리 존스 버젼 투 페이스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매력적인 캐릭터라는 점, 역시 변함없다.



배트맨은 확실히 너무 약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처음 봤을 땐, 사람들이 '배트맨이 뭐 저리 약해.'라고 투덜거릴 때 '바보들, 그게 리얼리즘이야'라고 비웃었는데 다시 보니 좀 필요 이상으로 약하다. 액션 장면은 별 볼일 없는 배트맨 시리즈의 전통은 둘째 치고 수십명의 적을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던 라스 알굴의 수제자였는데 그런 배트맨을 가장 핀치에 몰리게 한게 개라니. 개같은 '놈'도 아니고 그냥 '개'. 칼은 들어가지도 않고 직격탄 빼고는 방탄도 확실하다던 수트, 개 이빨엔 그냥 속수무책인 거다. 이 정도면 그 개들도 보통 개는 아닌가본데.
배트맨, 최강의 적은 '개새끼' 파문.

그리고 배트맨의 이기심이나 자기중심적인 면도 볼 수 있었다. 스케어크로우의 말처럼, 정말 생각해보면 카피캣들이나 진짜 배트맨이나 별 다를 바가 없다. 누가 돈이 더 많아서 장비빨이 화려한지, 누가 싸움을 조금 더 잘 하는지, 그리고 누가 하키 방어복을 입었는지 아닌지의 차이 뿐이다.(누가 더 잘생겼냐하는 건 그냥 넘어가자.) 어차피 불법 자경단이긴 마찬가진데 누가 누굴 훈계하고 체포하는 건지. 그들을 붙잡아 묶어두는건 영화 말미에 배트맨도 그들과 별 다를 바 없이, 악당과 별 차이 없는 존재로 전락하게 될 거라는 것을 암시하는 건 아니었을까.

게다가 폭스의 활약이 나름 대단한데, 생각해보면 그건 알프레드가 했어야 되는 일 아닌가?



첫번째 관람 후에 했던 걱정이 있다. 조커가 죽지 않았는데 배우는 죽었으니 다음 편은 어떡하나 하는 걱정. 근데 생각해보니 조커가 이 다음 이야기에 더 들어올 여지가 없을 것 같다. 조커는 배트맨을 어둠의 기사로 만들어 놓음으로써 자기 역할을 다 하고 퇴장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이 이후에 더 나와서 더 큰 일을 벌려봐야 그저 배트맨을 괴롭히기만 할 뿐이다. 똑같은 뺨에 똑같은 세기로 따귀를 계속 맞으면 나중엔 얼얼함이 사라지고 무감각해진다. 그저 괴롭고 짜증만 날 뿐이다. 마찬가지로 이 다음 이야기가 또 만들어진다면 아얘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다른 악당이 등장해야 한다. 비긴즈에서 배트맨이 탄생했고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이 정체성을 확립했으니 이 다음 이야기에선 배트맨의 존재를 완전히 해체시킬 수 있는 전혀 다른 성질의 악당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로빈이 나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익히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로빈이 아니다.(크리스챤 베일도 로빈을 등장시키면 후속작에 출연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지.) 1대인 딕 그레이슨을 그냥 건너뛰고 바로 2대인 제이슨 토드부터 등장시키는 거다. 배트맨의 사이드킥이 아닌, 배트맨의 존재를 왜곡해서 받아들여 어둠의 자경단으로 뛰어들었으나 그 존재 자체가 배트맨에게 피해를 끼치는, 그러다 결국 배트맨과의 불협화음으로 악당이 되고 마는 그런 존재 말이다. 이제 배트맨은 자기의 신념과 다르게 '악'을 양산하는 존재가 되는 거다. (이 영화 이후로 배트맨은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더 폭력적인 무법자로 비뚤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뒤늦게 정신 차리고는 그걸 수습하느라 또 죽어라 날아 다니겠지.

조커처럼 크고 절대적인 악당이 더 나올 여지는 없어 보인다. 그랬다간 현실에 바탕을 둔 이 영화 시리즈의 세계관 자체가 붕괴될 위험도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로빈처럼 작고 별 것 아닌 것 처럼 보이지만 바위 틈새에 고인 물이 바위를 깨부수는 식의 작은 악당이 나와 조금 더 첨예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건 어떨까.




p.s- 영화 개봉의 시류를 타고 케이블 TV도 바쁘다. 얼마 전엔 '수퍼액션' 채널에서 배트맨 스페샬 이벤트를 하더니 엊그제 언젠가는 <기사 윌리엄>을 방영해줬다고 하니, 상술이라고 봐야할지 센스라고 봐야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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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아쉬타카 2008/08/11 17: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다크 나이트> 보면 볼 수록 더 얘기할게 많아지는 영화 같습니다.
    내일 또 보러가요 ㅎㅎ

  2. BlogIcon Μųźёноliс 2008/08/11 19: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습니다. 조커는 이 영화에서 '절대자'적인 역할을 하고 있죠. 하지만 절대자라는 표현보다는 저는 '딜러'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러니는, '조커'라는 한장의 카드가 게임을 관할하는 마스터가 된다는 것에 있죠.) 그리고 vigilante(자경단)라는 개념은, 사실 80년대 이후 '정의로움'으로 수식되는 경우는 드문 것 같더군요. 그 자체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져버리게 되었거든요. (...그게 누구 때문이라고는 굳이 말 안하겠습니다만;; ^^)

    참 속편에서 등장할 악당은 뭐가 될지 궁금하네요. 개인적으로는 캣우먼이 보고 싶..

    • BlogIcon 바구미 2008/08/11 19:41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놀란이 만든 캣우먼이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캣우먼은 나온다해도 투 페이스처럼 서브 정도의 역할이지 주적이 될 것 같진 않네요. 캐릭터의 비중을 떠나 남자 주인공의 대립각이 여자 악당이라는 개념을 미국 영화에선 어지간하면 기피할테니까요.

  3. BlogIcon 버러지 2008/08/16 0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트랙백 건너건너 찾아왔습니다~_~ 다음 시리즈에 등장할 악당 얘기에 괜시리 두근두근하네요=_=* 개인적으로는 리들러가 나온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저질러 버리고 극단으로 치달아 버린 배트맨을 만든 조커 다음으로 그런 배트맨에게 자문하고 되묻게 만드는 적으로 리들러가 등장한다면 재밌을 것 같아요-_-/ -蟲- P.S 트랙백 걸고 갑니다. 원치 않으신다면 덧글 혹은 제 블로그를 통해 알려주시길; 금방 조치합니다~_~/

  4. BlogIcon mad 2008/10/02 1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 후속편에 윌리엄 피츠너가 악역이 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커가 그에게 한 대사가 꽤나 의미심장했기에...

  5. 조커 ♡ 웨인 브루스 2008/10/28 2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실에 어차피 영웅도 없는데....뭣하러 배트맨이 필요하게씁니까..ㅎㅎㅎ....근본적이 아무리 배트맨이라지만......어차피.....배트맨 또한 영웅도 아닌데.....원래.....영웅따윈 존재하지 않는것이 현명한 답이아닐런지......=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