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보면 스포일러 직격탄 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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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좋은 건 좋다고 칭찬부터 하고 넘어가자.
확실히 새로운 볼거리가 천지빼까리로 깔렸다. 말타면서 총질하는 장면들을 한국 영화에서 보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다. 거짓말 하나 안보태고 엽총 돌리면서 쏘는 정우성은 일찌기 먼저 똑같은 퍼포먼스를 선보이셨던 캘리포니아 주지사 형님보다 훨씬 폼사리 난다. 혼자 그 많은 일본군들을 다 잡아잡수시는 장면은 마치 휠윈드 돌리는 만렙의 바바리안 같기도 하고 정무문의 이소룡과도 같으며 언월도를 휘두르는 일당백의 관운장과도 같았다. 말도 안되지만 그냥 멋진 거다. (제복 입은 정규군의 사격 실력은 형편없다는 클리셰) 역시 정우성은 정우성이다. 아무리 몇년 째 발가락으로 바퀴벌레 잡는 연기를 하고 있지만 여기저기서 꾸준히 데려다가 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거다.
작정하고 노골적으로 폼재는 총잡이들을 보는 것도 흥미롭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만큼 온갖 슬랩스틱과 궁시렁 말장난을 쏟아내는 송강호는 단연 볼거리중의 베스트다. 게다가 만주라고 확실히 말해주지 않았다면 국적불분명이었을 멋진 공간들. 이런 영화가 한국에 하나쯤 있어줄 법도 했다. 있을 때도 됐다. 사실 누가 보물을 차지하느냐는 처음부터 관심에도 없었다. 지도에 표시된 그 곳이 세 남자 중 누구에게도 쓸모있는 곳이 아니라는 건 영화 보기전 부터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보물이라든가 상금이 걸린 레이스를 다룬 영화치고 참가자 중 누군가가 그 보물을 차지하는 경우가 언제 있었던가. 이런 류의 영화는 누가 어떻게 되냐의 결과보다는 그 이전의 과정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기대치는 꽤 잘 충족시켜준 편이다.
류승수, 윤제문, 오달수, 손병호 등 얼굴만 봐도 아~하게 되는 좋은 배우들의, 짧아서 아쉽지만 그래도 진수성찬같은 출연도 좋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 많은 장점들을 무색케 할 결정적인 단점이 있으니, 바로 '예고편보다 재미없는 본편'이라는 점이다. '킬 빌'에서 쓰였던 곡을 다시 갖다쓴 무리수마저 민망해질 정도로 이 영화는 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전혀 아드레날린을 분비할 수 없게 헐렁하다.

아이러니한 것이, 얼핏 봐도 가장 공들였거나 가장 힘들었을 것 같은 사막 대추격신이 영화 전체 중에 가장 지루하고 의미없는 시퀀스였던 것 같다. 이리 저리 총알을 뿌려대는 것 외엔 딱히 별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길긴 무지하게 길다. 창이의 부하들은 왜 배신을 때리고 도망갔는지 설명도 안해준다.

결말이 좀 그렇다. 소금을 안 넣은 닭죽처럼 싱거워 미칠 지경이다. 왠지 태구가 최후의 승자가 될 것 같더니만 역시나 그렇다. 예상대로 된다는 게 반전이라면 반전이랄까. 반은 억지로 세 명이 최후의 결전장에 옹기종기 모일 때, 그리고 80% 정도는 억지인 '서로 쏴서 이긴놈이 좀 짱인듯' 게임을 시작할 때, 저러다 셋 다 죽으면 보는 사람 정말 화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최악의 결말은 피해가더라.

정말 공들인 흔적도 많이 보이고 이것 저것 시도한 것도 많고 배우들도 참 좋은데 이상하게 재미가 없는 이유는 조금만 생각해보니 금세 알 수 있겠더라. 기대치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영화가 흘러갔기 때문이다. 제목에서 그리고 홍보 과정에서 뉘앙스를 풍겼던 것 처럼 3파전의 각개 대립구도로 흘러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쉽고 빠르게 편이 갈려버렸다. 그렇다고 도원과 태구의 태그팀을 압도할만큼 창이가 거대하지도 않다. 도원의 총구가 태구에게 향할 수 밖에 없는 반전을 포기하고 차라리 태구가 손가락 귀신인 것을 미리 밝혔더라면 세 명이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가 더 유기적으로 얽혀들어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아니면 애초에 지도를 도원에게 쥐어주고 필요에 의해 태구를 데리고 다니는 모양새로 갔어도 좋았을 뻔 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나중에 알고보니 사실 좋은 놈은 좋은 놈이 아니었고,...하는 식으로 각자 숨겼던 비밀이 밝혀지면서 세 놈의 성격이 싹 뒤바뀌어버리는 것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하여튼 뭔가가 다 밍밍하고 허술하다.

그것도 참 웃긴게, 도원이 왜 착한 놈인지 창이는 왜 나쁜 놈인지 그리고 태구는 뭐가 이상한 놈이라는 건지도 사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냥 돈만 있으면 된다는 도원이 착한 놈의 상징일 이유가 있나. '나쁜 놈이랑 거래하지 않는다'는 신조는 착해서라기 보다는 그냥 일종의 도덕적 결벽증인 것 같은데 말이다. 창이는 물론 살벌하고 무자비하긴 하지만 그것보다 2인자 컴플렉스에 시달리는 강박증 환자의 느낌이 더 강하다. 태구는 하는 짓이 웃겨서 그렇지 가만 보면 하는 짓마다 멋지고 다 잘 된다. 셋 중에 가장 현실적인 목표를 갖고 있기도 하고. 이상한 구석이 전혀 없는 거다.

배우 얘기를 좀 해 볼까. 우선 정우성 지못미다. 꿔다 논 보릿자루 마냥, 딱히 이야기의 큰 줄기 안에 깊숙히 개입되어있질 않다. 그냥 창이와 태구의 대립구도로만 갔어도 크게 상관있진 않았을 것 같단 말이다. 셋 중에 제일 폼나긴 한데 그래서 더 안습인 거다. 그냥 늘씬하고 보기만 해도 감탄사가 나올 지경인 A급 마네킹 하나 갖다 세워놓은 거랑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연기는 점점 퇴보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이병헌 역시 지못미다. 송강호는 그렇다 치자. 하지만 이병헌은 정우성한테 지지 않겠다는 듯이 나름 간지 폭발을 꾀한다. 저질몸 배우 중 한 명이었는데 언제 운동을 했는지 역삼각형 몸매도 슬쩍 보여주고 꼬질꼬질한 영화의 트렌드인 스모키 메이크업까지 했는데도 정우성 옆에 있으니 일단 신체 비율에서 꿀리고 들어가지 않던가. 이병헌 혼자 나오면 멋진 이병헌인데 리얼 8등신 정우성 옆에 있으니 꼬꼬마 신세를 면할 수가 없어 보이더라.

하여튼 김지운 감독 답지않게 고민을 덜 한 느낌이다. 결혼식 부페처럼 이것 저것 맛 볼 건 많은데 정작 혀에 착 감기는 건 뭐 하나 없는 느낌.

조금 다른 얘기. 요새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영화평을 읽어보면 많이 나오는 말 중에 하나가 '만주 판타지'에 대한 불만과 핀잔이다. 실제 만주를 알기나 하냐느니 무슨 판타지의 공간으로 허풍을 떨었다느니 그런 말들 말이다.
그렇지만 내 생각은, 뭐 어떤가 싶다. 아니, 오히려 반갑고 좋다. 중요한 역사적 팩트를 왜곡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허구의 이야기인데 우리나라도 판타지스러운 시대적 세계관을 하나쯤 더 가져서 나쁠 것 없지 않은가.
일본에는 닌자가 활동하던 전국시대가 있고 중국에는 시대 불분명의 강호가 있다. 서구 영화에는 불스아이&호크아이의 탕아들로 가득찬 웨스턴도 있고 따발총, 시가, 마피아, 팜므 파탈들이 치정극을 벌이는 3~40년대 느와르 암흑가도 있지 않은가. 그 뿐인가, 요정들이 활을 쏘는 중간계도 있고 포스가 함께하는 은하계도 있는데 뭐.
건국신화, 정복전쟁의 고구려나 의적들의 롤플레잉 조선은 이미 TV 드라마에서 다 써먹었고 협객들의 일제시대 종로는 이미 영화쪽에선 명맥이 끊긴지 오래다. 곧 개봉할 <다찌마와 리-악인이여...>도 만주를 배경으로 했다던데 그 쪽은 과연 어떤 식으로 만주를 묘사했을지 궁금하다. 재미있는 이야기와 인물들이 뛰어놀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지는 분위기인데 어떻게 반갑지 않을 수가 있나.
다만 만주를 새로운 활극의 공간으로 재구성한 건 좋지만 그걸 서부극 장르로 접근한 건 경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가까운 중국의 흉내를 내며 훨훨 날아다녀도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어색한 마당에 토양 자체가 다른 먼 나라들의 판타지를 흉내내다니. 역시 무리수는 무리수였다.

그리고 또 어떤 영화평들을 보면 마치 '제 2차 디워 대첩'이라도 벌어질 듯이 눈에 불을 켜고 득달같이 욕을 하는 경우도 많더라. 그런데 뭐, 재미없는 영화가 어디 한 둘이었던가. 물론 김지운 감독이나 주연 배우들에 대한 기대치가 컸기 때문에 실망감이 클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이를 갈며 욕을 할 정도인지는 모르겠다. 김지운 감독이 누구처럼 뻔질나게 얼굴 비춰가면서 애국심에 호소한 것도 아니고 출연한 배우들도 어디 나와서 홍보하고 그러지도 않던데 말이다. 한국 영화 위기론을 들먹이며 이 영화를 꼭 봐야한다는 듯이 말하던 사람들은 정작 이 영화의 관계자들이 아닌 제3자들이었다.
영화가 못만들어진 것, 실망스러운 것은 화가나는 일이지만 그 화가 필요 이상으로 크고 매서운 것 같단 말이다. 마치 자신의 영화 선택에 대한 자책감을 다른 데로 해소하려는 것 처럼 말이다.

치명적인 단점이 아쉽긴 하나 전체적인 느낌으로는 마냥 나쁘지만은 않은 영화였다. 재미없다는 말을 워낙에 많이 들어서 기대치가 낮아졌기 때문일까. 그래도 재밌는 건 재밌는 거다.


p.s 1- 느닷없이 썬글라스를 쓴 송강호의 '넌 누구냐' 대사. 아무리봐도 올드보이 패러디다.

p.s 2-오래 봐왔지만 막상 직접 들어가서 영화를 본 건 처음인 수원 남문의 '중앙극장'. 모처럼 옛날 생각도 나고해서 거대 체인이 아닌 소박한 동네 극장을 느껴보고 싶어서 찾은 곳이다. 티켓 판매대가 있는 홀에는 영화 '허브'나 '미녀는 괴로워'의 대형 포스터가 아직도 붙어있다. 정말 너무 정겨운 거다.
상영관 내에선 정말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스크린엔 공익 광고가 나오고 스피커에선 수원 주민 여러분 어쩌고 하는 방송이 흘러 나온다. 야 이거 정말 원하던 분위기인 거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쿵쾅거리며 들락날락하고 휴대폰을 열어서 확인하는 건 너무 당연한 분위기인 거다. 옆사람과의 대화와 놓친 장면 확인하기 크리는 기본이더라. 이거 너무 소박하고 서민적이어서 좋다. 그리고 다신 가고싶지 않다.


*추가*
그러고보니 정말 세 '놈'의 역할이 어느 순간 바뀐다. 이상한 놈인 태구는 셋 중에 꿈도 제일 소박하고 붙잡힌 아이들을 구해주는 장면이나 과거를 청산한 모습등이 알고보면 좋은 놈. 좋은 놈인 도원은 사실 현상금 외엔 관심사가 없고 더 높은 현상금을 책정할 수도 있을 '손가락 귀신'의 정체가 밝혀지자 잠시나마 파트너였던 태구에게로 총부리를 돌릴 정도로 냉혈한이니 나쁜 놈. 나쁜 놈인 창이는 사실 겉으로만 보기엔 다수의 부하들과 날카로운 칼솜씨 등 셋 중에 가장 화려하고 거창해 보이면서도 마음 속은 가장 약하고 또 승산도 없는 게임을 제안했다가 혼자 죽는 걸 보니 이상한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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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아쉬타카 2008/07/21 0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고편 보다 재미없는 본편에 거들고 싶군요. 본편이 그리 재미없는 편은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예고편이 너무 멋졌죠. 기대를 엄청나게 하게 만들어 놓은 예고편 때문에 오히려 본편이 재미없어진 부분도 분명 있다고 봅니다. 물론 그걸 제외하더라도 아쉬운 점도 있는 영화였지만요 ^^;

  2. BlogIcon 스테판 2008/07/21 11: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드는 생각이 우리나라 감독들한테는 돈 많이 쥐어주면 안되겠다-_-...랄까요.

  3. BlogIcon 배트맨 2008/07/21 1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확실히 김지운 감독의 재능을 보았을때 아쉬운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조각 조각 떼어놓고 보았을때는 멋진 시퀀스들이 보이는데, 맞춰놓고 전체를 보면 '김지운답지 않다'라는 그런 느낌이요..

  4. BlogIcon 비트손 2008/07/21 1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전히 평범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재미있는 영화이긴합니다. 함께 본 여자친구 역시 2시간 남짓 정우성의 자태만으로도 흡족한 표정이었으니 말이죠. 볼거리 이야깃거리를 낳은 것 만으로 절반의 성공을 거머쥔 영화가 아닐까 싶네요. 그 절반은 이영화 이후로 채워나가야 할 것으로 보이구요.

    • BlogIcon 바구미 2008/07/21 14:39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이러니한 건, 평론가라는 사람들이 칭찬일색인데에 반해 그 '평범한' 보통 관객들의 입에서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있다는 거죠.
      여자친구분께선 내심 아쉽지 않으셨을까요. 셋 중에 정우성이 제일 적게 나오잖아요.^^

  5. BlogIcon zelon 2008/07/21 1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사막 추격신이 젤 재미없었다는데 한표!

  6. BlogIcon Ryugun 2008/07/22 1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엄청 무거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가벼운 영화라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

  7. BlogIcon feveriot 2008/09/02 15: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분명 재밌게 몰입해서 봤는데요
    충분히 말씀하시는 내용들이 다 이해되고 공감이 됩니다.

    이야기가 많아서 그런지 정말 헷갈리는 영화네요.
    뭐 그렇다고 다시 볼 생각이 들진 않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