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인 스포일러는 없으나 미리 알면 좋을 것 없는 내용 잔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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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 서먼의 G-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뒤지진 않을 민폐대왕 슈퍼히어로 핸콕, 하지만 G-걸은 그래도 한 남자의 인생만 꼬이게 했을 뿐이지 이 핸콕이란 녀석은 아얘 시민들로부터 공공의 적 쯤의 취급을 받으며 대놓고 욕을 먹는다. 시민들 입장에서는 핸콕이 나서서 강도들을 잡는 것 보다 챙길 거 다 챙긴 강도들이 얼른 차 타고 사라지는 게 오히려 더 안전할지도 모른다. 시민의 안전을 생각하는 공명심이나 정의감 같은 것은 찾아보기 힘들고 그렇다고 딱히 잘난 척 하며 힘자랑을 하고싶은 것 같지도 않다. 뭐랄까, 어차피 있는 힘, 뻔히 나쁜놈들이 활개치고 다니는데 그냥 놔두기도 뭐해서 귀찮지만 처리한다는 느낌이랄까. 지하철에서 나도 사실 피곤해 늘어져 있는데 할아버지가 타는 걸 봤으니 딱히 못 본 척 앉아있기도 뭐해 자리 양보를 할 때의 반 귀찮음, 반 양심 정도에 가까워 보인다.

척 봐도 이 핸콕이라는 언마스크 슈퍼히어로의 능력치는 슈퍼맨 정도는 되는 것 같다. 기관총 세례에도 흠집 하나 나지않을 만큼 강한 신체에 자동차를 무슨 공 던지듯이 던졌다가 잡았다가 할 만큼 힘도 강하다. 쉽게 말해 불사신이다. 그 정도면 아마 안 먹어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슈퍼맨처럼 자아의 정체성이나 확실하면 모를까, 이 녀석은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는 기억 상실증 환자란다. 신분도 확인되지 않을테니 어디가서 정체를 숨기고 취직해 직장인 행세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인 거다. 핸콕이 아니라 누구라도 그런 상황 쯤 되면 술에 절은 채로 길거리에 널부러져 잠이나 자는 루져의삶을 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집은 있긴 있지만) 노숙자 생활이나 영웅 놀이 말고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인생이니 저 자신은 오죽 괴롭겠는가. 농구공은 그냥 던지면 들어가는 녀석인데 미국인들의 보편적인 취미 중 하나인 스포츠 경기 관람엔들 정을 붙일 수나 있을까.

그런 면에서, 한심해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게 곧, 내면적으로는 그냥 현실세계에 존재할 법한 사람이 비현실적인 큰 힘을 가졌을 때의 여러가지 선택 중에 하나일 수도 있겠지 싶다. 그래서 음주 비행을 하는 노숙자 슈퍼히어로의 영화 초반부는 굉장히 매력적이고 흥미롭다.

하지만 영화는 어느 순간 엉뚱한 방향으로 길을 바꿔 탄다. 정체가 드러난 이 영화의 정체성은 민폐 히어로의 파란만장한 도시 지키기 이야기도 아니고 그 히어로가 정신 차리고 이미지를 바꾸는 갱생 드라마도 아니다. 그런 내용은 이미 중반부 이전에 모두 소개되고 마무리 되는 작은 소동일 뿐이다. 그리고 그 이후는 스스로 조롱했던 슈퍼히어로 영화들의 오래된 관습들 보다도 더 지루한 나락으로 빠진다.

코미디인줄 알았던 영화가 별안감 진지해져 버린다, 거기까진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코미디 장면들이 끝나면 반전이 터지고 그 반전 이후의 분량은 도저히 예고편에 넣을 수 조차 없는 장면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반전을 감추는 바람에 반전 이후의 내용은 당연하게 감춰져버린, 태생부터 장르를 오해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였던 거다. 문제는 그 나머지의 진지한 부분이 터무니없니 진부하다는 데에 있다.

핸콕과 메리의 관계를 통해 밝혀지는 핸콕의 태생은 가볍기 때문에 즐거운 영화에 쓸데없이 부담스럽기만한 무게를 짊어 지우고 만다.

영화 안에서 조롱했던 슈퍼히어로 만화들의 관습보다 더 진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쫄쫄이를 입은 만화주인공들을 보며 기껏 '호모'라고 일축했던 핸콕이, 그 정도로 노골적인 알록달록 스판덱스는 아니더라도 꽉 끼이긴 마찬가지인 유니폼을 입고 등장한다. 우주에서 온 이방인도 아니고 군 실험을 당한 피해자도 아닌, 단지 강도를 당해 정신을 잃은 후 초능력이 생겼다던 핸콕의 기원이 사실은 그게 아니라 거의 그리스 비극에 가까운 운명론적인 탄생 배경을 갖고 있었던 거다. 자기가 조롱했던 대상과 똑같이 닮아가면 대체 어쩌자는 건가.


이 영화는 50 퍼센트의 영화다. 절반은 맘에 들고 절반은 내다 버리고 싶은 반쪽짜리 영화 말이다.


p.s 1-샤를리즈 테론은 진한 눈화장이 참 잘 어울린다.
p.s 2-손목을 잘라 들고나오는데도 잘 했다고 박수치고 굿 잡...이건 좀 무섭다.ㄷㄷㄷ
p.s 3-술취한 히어로 한 명만 진상을 부려도 그 근방이 쑥대밭이 되는데, 시빌 워는 정말 오죽했을까.
p.s 4-술취한 핸콕의 모습에서, <슈퍼맨3>의 술취한 슈퍼맨의 진상짓이 오버랩 되더라.
p.s 5-'그들'은 대체 누구냐고.
p.s 6-후줄그레한 패션, 나름 맘에 든다. 이 영화 흥행 성공하면 독수리 패션도 같이 뜰 거라는 데에 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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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Stephan 2008/07/07 0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영화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머리로 X침. 왠지 모르게 그 아픔이 느껴지는 듯한 느낌.. 그거 맞고 살아있는 녀석이 더 신기하더군요;;

  2. BlogIcon kenu 2008/07/08 04: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차라리 취권처럼 끝까지 술로 갔으면 했습니다. ^^;

  3. BlogIcon 배트맨 2008/07/08 07: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와 같은 상영관에서 보셨네요. ^^* 저는 나름대로 재미있게 관람했습니다. 오랜만에 상영관에서 많이 웃어가며 보았어요.

    트랙백과 덧글 콤보를 동시에 주셔서 감동 게이지가 급상승했습니다. 바구미님 굿 잡! 굿 잡! ^_^

  4. BlogIcon 인생의별 2008/07/08 13: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언가 못다한 이야기가 많긴 많은 것 같은데
    문제는 속편이 별로 궁금하지 않다는 게 아닐까 싶어요;;

    • BlogIcon 바구미 2008/07/08 18:49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건 그래요. 궁금한 게 있긴 한데 그것 만으로 속편을 기대할 정도는 아닌 것 같네요. 어차피 속편에선 술 마시고 비틀거리지도 않을테니까요.